※ 오역, 의역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만 해주세요.
'남편이여, 죽어 주지 않겠는가'의 실사 드라마화, 축하드립니다. 상당히 긴박감 있는 전개가 이어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드라마는 총 12화인데, 소설을 이미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1화에서 이미 원작의 3분의 1 정도까지 진행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원작의 설정을 살리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 자신도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았던 남편 측의 사정이나 심리도 정성스럽게 그려질 예정입니다.
본작은 결혼 5년차에 남편과의 대화나 접촉이 없어져 버린 주인공 마야를 중심으로, 학창 시절 친구로 돌싱인 리코, 남편의 가스라이팅에 고통받는 아이를 둔 유리카라는 30대 후반의 여성 3명의 갈등을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화가 발표되었을 때, 과격한 제목에 일부 SNS가 떠들썩했는데, 일부러 남편 측의 사정을 그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성 측의 사정도 쓰려고 하면 쓸 수 있지만, 이번 작품의 주제는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단행본 후기에도 썼는데,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십수 년 전에 우연히 읽은 '남편의 죽음에 구원받는 아내들(원제 : Liberating Losses: When Death Brings Relief)'이라는 논픽션입니다. 그런 일이 있구나 하고 쓰여있는 내용에 굉장한 충격을 받고, 언젠가 일본을 무대로 이런 여성들의 고통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데프 보이스' 시리즈와는 상당히 분위기가 달라서, 출간되었을 때는 이런 소설도 쓰시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만…….
그렇죠. 다만, 저로서는 작가성을 확 바꿨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리고 싶은 건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이거든요. 그들에게는 절실하고, 노력이나 웬만한 원조로는 이겨내기 어려운 상황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 괴로움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목소리는 닿지 않아요. 그렇다면 소설을 통해 우선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원동력이에요. '형사 이즈모리' 시리즈 최신작에서 여성들의 고통을 둘러싼 사건을 중심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요.
여성들의 고통을 그려야 할 주제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인가요.
그야말로 '남편의 죽음에 구원받는 아내들'을 읽고 뉴스도 보고 하면서 점점 그렇게 되었다고 할까요. '형사 이즈모리 도주의 행선지'에서는 재일 외국인 여성이나 코로나 시국의 실업으로 궁지에 몰리는 등 한정된 상황에 있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는데, 그런 특수성이 없어도 여성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고 남성과 같은 권리를 부여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닿지 않는 목소리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 의심이 결정적이 된 것은, 일본의 젠더 격차 지수가 낮아 UN 인권 이사회도 문제시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았을 때였습니다.
일본의 낮은 젠더 격차 지수는 자주 화제가 되죠.
장애를 가진 분이나 성소수자, 재일 외국인 등을 둘러싼 사회 문제는 그런대로 의식하고 있었는데, 여성도 일상에서 위험에 노출된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있는, 그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고통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의 죽음에 구원받는 아내들'도 마음속에 있었으니까, 그럼 지금이야말로 결혼해서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 보자고 편집자에게 제안해 본 거예요. '원더풀 라이프'라는 소설에서 처음으로 여성 시점을 넣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있어서 여성 시점으로 그려진 장편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작가님은 살면서 '남편의 죽음에 구원받는 아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별로 없었습니다만……. 아내에게 척수 손상 장애가 있기 때문에 저는 일상적으로 간병과 집안일을 담당하고 있는데, 남자인 친구와 이야기할 때 집안일을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말을 듣고 '괜찮은가? 부인은 아무 말도 안 하나?' 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하더라고요. 집안일을 하는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남의 집 일이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만.
마루야마 씨 정도 세대의 남성은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분이 더 적은 듯한 인상이 있습니다.
남녀의 역할 분담이 명확했던 시대에 자랐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남성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거란 건 알아요.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남편 데스노트'라는 사이트가 화제가 되었는데, SNS를 들여다보니 남편에게 억압받아 내심 죽기를 바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적잖이 있더라고요. 물론 남성들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겠지만 그 고통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성 작가인 제가 여성 시점의 소설을 집필함으로써 보이는 것도 있지 않을까, 남성에게도 목소리가 닿기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실제로 남성 작가이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것이 있었나요?
이것도 솔직히 말하면 거의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예전에 취재에서 '데프 보이스' 시리즈의 주인공 아라이가 아내에게 "남의 일이 되면 열심이네"라는 말을 듣는 대목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참고 : 마루야마 마사키×이가라시 다이 '데프 보이스' 대담) 그건 평소에 제가 듣고 있는 말이기도 한데, 그런 남성의 형편없는 부분은 리얼리티 있게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습니다(웃음).
아이는 일이 안정되면 갖자고 이야기했는데, 남편 미츠히로가 일방적으로 "슬슬 괜찮지 않아?"라며 말을 꺼내서, 마야가 '지금 내 일이 안정된 것처럼 보여? 얘기했잖아! 그보다 이 사람,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안 보고 듣지도 않는 것 아냐?'라고 질려하는 장면은 공감하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웃음).
그런 게 쌓이는 거겠죠. 저는 평소에 소설을 쓸 때 새롭게 직접 취재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 작품에 한해서는 담당 편집자의 도움으로 여성 세 분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쓰는 게 재미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흥미로운 토픽들뿐이었는데, '그런 소소한 일이 쌓이는 건가' 싶어 깜짝 놀랄 때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세면대에 면도한 흔적이 남아있는 게 너무 기분 나쁘다거나.
드라마에서도 재현되었죠.
상대가 좋고 싫고 이전에 생리적인 혐오감이 드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면도한 흔적이 남는 건 남자들에겐 너무 일상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네 싶어서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남편에 대한 푸념은 대부분 심정적인 것에 기인하고 있고,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생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쌓이거나 해서 균열이 깊어져 가는 거구나 싶었어요.
결혼 전에는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던 가치관의 차이가 점점 성가신 것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도 리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부부가 얼마든지 있고, 결혼이라는 것은 무조건 훌륭하다고 칭송할 일이 아니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도 결혼한다는 말을 들으면 모든 것을 잊은 얼굴로 "축하해"라고 축복하며 이 세상에 봄이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죠. 그게 저는 계속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두 명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고독이나 고통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줘도 될 텐데, 싶어서. 뭐, 그런 힘든 현실만 들으면 결혼하는 사람이 줄어서 저출산에 제동이 걸리지 않게 되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만…….
실제로 SNS 등에서 힘든 예를 너무 보고 들어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진 사람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진짜 죽이고 싶을 만큼 서로 미워하게 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될까, 100%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닌 결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걸 엔터테인먼트로서 파고들고 싶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마야의 남편이 실종되고, 그 뒤에 숨어있는 외도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사건성이 있는지 없는지 미스터리적인 기법을 써서 속도감 있는 재미를 제공하며 문득 자신과 비교해 보고 뭔가를 느끼는. 그런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미츠히로가 실종되며 마야는 자신의 남편에 대한 행동을 되돌아봅니다. 그냥 상대를 비난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어떻게 해야 했던 걸까 하고 마주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역시 마야를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짜증 나는 여자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마야에게도 제멋대로인 부분은 있고, 남편과의 관계가 파탄 난 것에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역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여성에게는 커리어를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는 중대사잖아요. 친구인 유리카도 가스라이팅이 싫으면 이혼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를 낳고 일을 계속하려면 남편과의 협동이 불가결한 일이라 전업 주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은 요즘 젊은이들도 있을 거예요. 제 친구 중에도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너무 지나서 이혼해도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고민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드라마와 달리 소설에서 리코는 이미 이혼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경제력을 가져야 했던 과정도 잘 그려져 있었던 것이 좋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확실히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준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취재한 어느 여성분의 남편은 폭언이나 폭력에 호소하지는 않지만 기분이 나쁘면 바로 부정적인 아우라를 뿜으며 피곤하다는 말만 하거나 입을 다물어 버린대요. 그런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견딜 수가 없고 자신도 그 아우라에 휩쓸려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니까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미츠히로가 그 타입이었죠.
참고로 했습니다. 남녀로 구별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걸 알지만, 아무래도 남자 쪽이 집에 오면 긴장을 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 많은 것 같아요. 부부니까, 일하고 와서 피곤하니까, 집에서는 일절 신경을 쓰고 싶지 않고 귀찮은 일도 하고 싶지 않고. 편한 사이니까 그러는 거라며 악의 없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지 취재하며 느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대신 여성이 신경을 쓰고, 긴장을 못 풀고 해야 되는 일을 하는 신세가 된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자주 듣네요.
좋든 나쁘든 단순하죠. 결혼하고 같이 살면 상황에 따라 상대와의 관계도 바뀌는 건데, 계속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거예요. 남자끼리 놀 때도 계속 학창 시절의 무리 감각이 남아있어서 바보 같은 시간을 공유한 추억만으로 계~속 즐겁게 보낼 수 있거든요.
옛날부터 굉장히 이상했던 게, 일부 남성은 모이면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지"라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잖아요. 또 그 얘기 한다! 하고 저도 추억의 디테일을 기억해 버린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만……(웃음).
계속 같은 얘기를 하고 있죠(웃음). 오히려 계속 같은 화제라도 즐거울 수 있기 때문에 이어지는 거예요. 저도 1년에 한 번 대학 시절 동창 모임이 있는데, 마지막은 꼭 노래방에 가요. "너는 이 노래지!" 하고 당시의 애창곡을 멋대로 넣어서 정해진 흐름을 만들고 신나게 놀다 해산하는 게 재밌어요. 하지만 여자들끼리의 관계라는 건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썼습니다.
여성은 비교적 '현재'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남편에 대해 서로 푸념하며 발산하는 자리가 중요하기도 하고요. 한편으로, 영원히 똑같은 처지일 수는 없는 친구를 부러워하거나 비교하며 우울해하는 등 3명이 살짝 어긋나는 부분도 이 작품에는 세세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결혼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그리고 경제력이 있는지. 여러 상황의 차이로 '저 사람은 결국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하며 우울해하는 일도 있겠지만, 그 차이가 반드시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쓰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예요. 이야기 속에서 3명의 우정은 여러 가지로 흔들리지만, 과거의 어느 경험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도 계속 갱신되고 있는 우정이 있고 세 명이 같이 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남성 간의 우정을 그리는 것과는 다른 독후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것 또한 리얼한 여성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남편에 대한 증오가 고조되어서 돌이킬 수 없게 되는 느낌에 가슴이 철렁한 분도 계실 것 같아요(웃음).
남편에게 '죽어 주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중 하나죠(웃음). 다만, 그들은 마음속으로 남편에게 죽으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고 죽여버리고 싶다고 항상 소망하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어디에도 발산할 수 없는 괴로움과 갈등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주면 좋을 텐데'라는 푸념으로 바뀐 것뿐이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제목이 과격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꽤 가볍고 정중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화 발표 때 너무 SNS가 떠들썩해서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지금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건 마루야마 씨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그 소망에 이르게 되는 경위를 정성스럽게 그리고 있다는 뜻이고, 이 소설을 읽고 구원받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어디까지 써도 되는가 하는 건 본작뿐만 아니라 항상 고민하는 일이기는 한데, 제가 모르는 곳에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 사람들의 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그 시점에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가능하면 본작은 아내에게 '죽어 주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게 하는 남성분들도 읽어 보시고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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