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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 관련 인터뷰/제작진

드라마 '엘피스 -희망, 혹은 재앙-'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아사다 치호×사노 아유미 프로듀서 대담

by 엘라데이 2022. 12. 2.

※ 오역, 의역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만 해주세요.
전문은 원문에서 확인해 주세요.
본 인터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문 ▶ 22.11.29 겐다이 비즈니스 (전편 | 후편)

 

 

 

 

일드 리뷰 : 엘피스 -희망, 혹은 재앙- (エルピス―希望、あるいは災い―)

※ 본 리뷰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며, 스포일러는 지양하고 있습니다. 엘피스 -희망, 혹은 재앙- エルピス―希望、あるいは災い― 2022 미스터리 KTV 2022.10.24 ~ 2022.12.26 줄거리 심야 버라이어티

elladay.tistory.com

 

 

 

최근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말이 많이 들리는데, 아직은 '러브신을 찍을 때 여배우를 보호하는 일이지?' 하는 식으로 엉성하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번 어떤 일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사다 : 한마디로 설명하면, 영상 제작에 있어 저희가 '인티머시 신'이라고 부르는 성적인 묘사나 과한 노출을 동반하는 장면에서 배우의 안전, 안심을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보호하면서 감독이 원하는 연출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한 일입니다.
여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가 대상이에요. 가장 가까운 것은 액션 코디네이터일지도 모르겠어요.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액션 신에 대해 난투 장면과 안무를 생각하면서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현장을 만들어 나가잖아요. 그것과 같은 일을 인티머시 신에서 하는 거죠.

 

아사다 씨는 그전까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통역을 하셨는데, 2021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라이드 오어 다이'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도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을 계기로 LA에 본거지를 둔 IPA(Intimacy Professionals Association)라는 단체에서 강습과 트레이닝을 받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되신 거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일의 양이나 상황이 달라졌나요?

아사다 : 제가 이 일을 시작하고 2년 몇 개월이 되었는데, 첫 해에는 직업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넷플릭스밖에 일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후 서서히 취재 기사 등의 미디어 노출이 늘면서 관심을 가진 일본 영화 프로듀서들이 오퍼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것도 포함해서 제가 관여한 영화는 이미 7편이 촬영을 마친 상태예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누구의 의뢰로 고용되고 어디서 보수가 지급되나요?

아사다 : 그건 다른 스태프와 마찬가지로 프로듀서나 프로덕션에 고용되고 제작비에서 보수가 지급됩니다. 다만, 최근에는 배우 측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써달라고 요청하는 케이스도 많이 늘었어요.
얼마 전에도 다른 작품 현장에서 어느 여배우에게 "어떻게 하면 아사다 씨와 일할 수 있나요? 저희 회사에서 고용하면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의 일은 배우의 케어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를 더 좋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 한 사람에게만 붙어있을 수는 없으니까 프로듀서에게 말해주세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배우를 보호하는 게 역할의 전부는 아니군요.

아사다 : 그렇죠. 이것도 다른 현장 이야기인데, 스태프가 '그때 왜 괴롭힘을 막지 못했을까' 하며 무의식적으로 성추행에 가담해 버린 괴로운 기억을 후회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때는 도저히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잖아요. 감독과 배우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속에서 결정이 내려지면 주위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미리 준비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저의 중요한 업무입니다. 스태프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있으면 저희도 안심이 됩니다"라고 하면 너무 기뻐요.

사노 : 이번 '엘피스' 현장에서도 촬영 스태프는 다들 꽤 흥미진진한 느낌으로 어떤 일을 해주실까 하고 호의적으로 맞이하는 인상이었습니다.

아사다 : 솔직히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스태프 명단에 있으면 현장에 계신 분들의 괴롭힘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어요. 프로듀서가 그런 부분에 인건비를 써서 제대로 대책을 세우려고 하는 팀이구나, 하는 분위기가 스태프에게도 전해지는 거죠.
게다가 스태프 크레딧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들어가면 관객과 시청자도 '이건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안전하게 촬영이 진행된 신이구나' 하고 안심하며 보실 수 있죠. 그 신용은 절대로 배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안전하고 안심되는 현장을 제공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오퍼를 받은 시점에서 거절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 케이스도 있었나요?

아사다 : 올해 초 영상 업계의 성추행이 연이어 밝혀졌을 무렵부터 갑자기 오퍼가 늘었어요. 다만, 정말 배우와 현장을 생각한 의뢰만 있는 게 아니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크레딧에 넣어두면 작품을 지키기 위한 이른바 '알리바이 만들기'가 되겠지 하며 그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오퍼하는 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분들께는 제대로 제 본래의 역할을 전하고 그 역할을 준수할 수 없다면 투입되는 의미가 없다고 말씀드려서 미리 거절합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엘피스'의 인티머시 신에 대해 아사다 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흐름으로 일을 하셨는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본작에서는 11월 7일에 방송된 3화와 11월 14일에 방송된 4화, 그리고 11월 28일에 방송된 6화에 각각 인티머시 신이 있었죠.

아사다 : 네, 대본을 받으면 우선 인티머시 신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해서 간단히 엑셀 표로 정리합니다. 3화로 말하면 사이토(스즈키 료헤이)가 에나(나가사와 마사미)의 집에 방문했을 때 부엌에서 우는 에나에게 사이토가 가슴을 빌려주고 그대로 키스에서 섹스로 넘어가는 신이에요.
대본에 '머리에 살짝 닿는다', '가슴에 무너진다', '입을 맞춘다', '에나의 옷 속에 손을 넣는다', '소리를 낸다' 등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무엇을 입고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어느 정도의 행위인지, 거기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등을 감독님께 하나하나 여쭤봅니다.

 

어떤 연출과 묘사를 생각하고 있는지 감독에게 묻는 거군요.

아사다 : 예를 들면 키스신에 대해서는 감독님으로부터 '과거에 교제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떠올리고 있는 키스'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런 감정이 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라면 입을 벌리는 진한 키스를 하지 않을까, 하는 해석을 들었어요.
또, 감독님으로부터 대본에 있던 '에나의 옷 속에 손을 넣는다'라는 동작은 잘라낼 것 같다는 변경 사항이 전달되었습니다. 그 대신 목덜미를 손으로 쓰다듬거나 목에 키스를 하는 동작을 추가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고요. 그 흐름에서 '소리를 낸다'라는 에나의 지시문으로 연결한다는 해석입니다. 그때 소리에 더해 표정도 클로즈업으로 찍고 싶으신가요? 하는 것도 확인합니다.

 

상당히 구체적인 부분까지 채워 넣는군요.

아사다 : 다음으로, 지금 말한 것을 전부 배우부에 전달합니다. 예를 들면 '소리를 낸다'라는 것은 어떤 소리인지 등의 감독에게 들은 뉘앙스를 배우에게 전해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확인하는 거예요. 그리고 NG가 있을 경우에는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돌아가서 "이건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라든가, "이분은 이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하고 소통을 거듭해 나가요.
또 3화에는 '이불 위에서 벌거벗은 에나가 잠들어 있다'라는 지시문이 대본에 있었기 때문에 "벌거벗고 잠들어 있다는 건 어떤 상황인가요?" 하는 것도 여쭤보았습니다. 감독에게 '설정상으로는 전라지만 실제로는 담요를 덮고 있어서 무릎 밑이 보이는 정도'라고 듣고 그것을 나가사와 씨 측에 전달하는 거예요.

사노 : 그때 아사다 씨가 감독에게 담요의 두께까지 확인하는 것을 보고 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사다 : 이불 밑은 나체여야 하는데 이불의 두께에 따라서는 속옷이나 레깅스 등 몸에 걸친 것의 라인이 드러나 버리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이때는 촬영이 여름 끝물이라 괜찮았지만 겨울의 추운 시기라면 스웨트셔츠를 입거나 탕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촬영 당일에 누가 그 준비를 할지에 대한 것도 제가 총괄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누가 담당했나요?

사노 : 의상부나 스타일리스트가 "제가 저번에 했을 때는 이렇게 했어요" 하면서 튜브탑이나 누브라를 준비해 주기도 하고 방한용품은 제작부라든가, 거의 현장의 관례나 스태프의 경험에 따라 가능한 한 배려를 했던 것 같습니다.

아사다 : 베드신에서 배우의 가슴을 가리려고 해도 그게 의상부의 일인지 근처에 있는 메이크업부가 하는지 연출부인지 하는 것이 지금까지 애매했어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있으면 그런 것은 우선 전부 제가 하겠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은 본래의 의상이나 메이크업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거죠.
또 배우 입장에서도 자신의 몸이나 담요에 손을 대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되니까요. 그게 한 사람으로 집약된다는 것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두는 장점이에요.

 

그렇군요. 스태프의 부담을 덜어주는 메리트도 있네요.

아사다 : 네, 스태프 여러분이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제 업무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현장의 관례나 경험으로 대응하는 것의 리스크는 '옛날에 벗었으니까 이번에도 벗을 수 있겠지' 하는 분위기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나이를 먹거나 사람에 따라서는 결혼, 출산 등의 라이프 스테이지를 통과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생각과 감각, 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집니다. '이 이야기의 이 장면에서 이 역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최종적인 결단은 어디까지나 그때그때 당사자가 정하도록 하고 있어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 일해 보고 배우분들로부터 실제로 어떤 소감을 들었나요?

아사다 : 배우분들께는 역시 안심하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촬영 전에 저와 출연자들 간에 장면 확인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때문에 공통 인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다/할 수 없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더 편하겠다' 하는 대화를 사전에 상대역과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번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 현장에 따라서는 출연자들이 처음 대면한 날에 인티머시 신을 촬영하는 일도 있거든요. 반대로 출연자들이 많이 친해져서 그 때문에 싫은 것을 말하지 못한다는 패턴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측 사이에 중개역으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들어가는 게 무척 메리트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럼 오오네 히토시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진들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해한 것 같은가요?

아사다 : 이번에 처음으로 같이 일해보고 저는 오오네 감독과 좋은 형태로 작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일반적으로 감독에게 있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절대 100% 일이 편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감독이 직접 배우에게 전달했던 것을 중개역이 잠깐 맡아두는 번거로움이 생기는 거잖아요. 확인할 사항과 회의가 늘고 말을 전하다가 뉘앙스가 달라지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오오네 감독은 필요한 정보를 확실하게 전달해 주셨고 저는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프로세스에서 어려움을 느끼셨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닐 거예요. 그래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투입되어서 배우가 안심했고 그 결과 좋은 연기를 찍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노 : 오오네 감독은 아사다 씨가 와주셔서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움푹 패인 요가볼을 보고 이게 프로의 일인가 하고 납득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도 받았습니다.

 

'움푹 패인 요가볼'은 뭔가요?

아사다 : 아아, 그건 배우들의 몸 사이에 끼워서 밀착 정도를 조절하거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갖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예요.

 

감독에 따라서는 카메라가 돌아갈 때 그 자리의 흐름이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을 찍고 싶어 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기본적으로 그런 촬영 방식이 허용되지 않게 될까요.

아사다 : 실제로 '그렇게까지 정해져 있지 않아',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으면 몰라'라고 말하는 감독도 많이 계시는데, 저는 아예 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쪽에서 질문을 해서 여기까지는 보여주고 싶다, 이 이상은 안 해도 된다, 하는 식으로 감독이 상정하는 범위나 라인을 어떻게든 들으려고 합니다.

 

오해받기 쉬운 것 같은데,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각본과 연출에 대해 검열을 하거나 퇴짜를 놓는 건 아닌 거죠?

아사다 : 네, 그 부분은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작품의 독창성을 제한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요. 반대로 표현의 폭을 넓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선 프로듀서와 감독이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고, 저는 어디까지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스태프 중 한 명인 거예요.
만약 그 작품에 나오는 인티머시 신이 저 개인의 윤리관이나 도덕을 뛰어넘는 과격한 것이라고 해도 거기에 대해 '이런 장면을 찍으면 안 된다'라든가 '이건 너무 불쾌하니까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일은 없습니다. 감독과 프로듀서가 하고 싶어 하고 배우가 거기에 납득하고 있다고 확인이 되면 그것을 얼마나 안심, 안전하게 실현하는지가 저의 일이니까요.

 

예를 들어 성폭력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이 있는 경우에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범위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아사다 : 그건 어려운 부분이라서 작품으로서 성폭력을 긍정하고 있는지, 아니면 등장인물 중 한 명이 긍정하는 캐릭터인지에 따라 다르지만 만약 각본 단계에서 명확하게 사회적으로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저는 프로듀서에게 상의할 것 같습니다. 저의 지식만으로 대응이 어려운 내용일 경우에는 필요에 따라 전문가의 감수를 받기도 해요.

 

혹시 촬영 당일에 감독이 연출을 변경해서 처음보다 과격한 신이 되는 일은 없나요?

아사다 : 기본적으로 현장에서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중개 없이 사전에 들었던 것 이상의 큰 변경은 불가하다는 것을 납득하고 있습니다. 당일의 갑작스러운 연출 변경이 얼마나 배우에게 부담이 되는지를 이해하고, 제가 작품에 들어가면 그런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감독이나 프로듀서에게 알리는 것도 저의 중요한 역할이에요.
다만, 물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변경 사항에는 임기응변으로 대응합니다. 어떻게 하면 배우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감독의 희망을 맞출 수 있을지 가능한 한 아이디어와 테크닉을 조언하려고 해요.

 

애초에 사노 씨가 이번 '엘피스'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투입하기로 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노 : 지금까지 저는 프로듀서로서 인티머시 신이 있는 드라마를 거의 다뤄보지 않았어요. '콰르텟'(2017년・TBS), '이 세상의 한구석에'(2018년・TBS) 때 키스신이 있었던 정도죠. 이번에 '엘피스'에서 처음으로 대본 안에 이른바 베드신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런 신을 찍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무서웠어요.

 

무섭다는 건?

사노 : 예를 들어 베드신을 찍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하고 현장에서는 어느 타이밍에 (배우들이) 어떤 모습으로 있으면 좋은지, 이런 것을 전혀 모르는 거예요. 말씀드렸듯이 지금까지 그런 장면은 현장의 관습이나 스태프의 경험에 따라 케어했던 것이 현실이거든요.
그런데 올해 들어 영상 업계에서 다양한 성추행 사건이 터졌잖아요. 그걸 간과해온 지금까지의 관습에 문제가 있는 건데, 결국 그 관습에 의지해야 하면 곤란하지 않나 싶었어요. 그러다 마침 넷플릭스 작품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도입된다는 기사를 읽고 아사다 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자신의 공부도 겸해서 제대로 프로에게 부탁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도입할 때 다른 분과 상의도 하셨나요?

사노 : 이미 출연이 정해져 있던 나가사와 마사미 씨에게 "이런 분께 부탁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하고 상담했더니 꼭 부탁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에 상대역인 스즈키 료헤이 씨에게도 여쭤보고 투입을 결정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상담하는 순서가 저걸로 괜찮은 건가 하고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건 무슨 뜻인가요?

사노 : 무심코 여배우 쪽에 먼저 물어보고 말았는데, 만약 거기서 나가사와 씨가 "저는 없어도 괜찮습니다"라고 하셨으면 과연 나는 료헤이 씨에게 상담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료헤이 씨는 투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셨는데…… 하는 일도 있을 수 있잖아요. 민감한 장면을 케어해 주길 바라는 건 여배우뿐이라는 제 안의 젠더 고정관념을 깨달았습니다.

 

'관습을 따르면 괜찮겠지'가 아니고, '처음 하는 거니까 무섭다'라고 느끼고 프로에게 부탁할 생각을 한 사노 씨의 감각이 대단합니다.

사노 : 아사다 씨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액션 코디네이터에 비유하셨는데, 정말 그 말대로예요. 변호사 드라마를 할 때는 변호사에게 법률 감수를 부탁하고 의료 드라마를 할 때는 의료직에 의료 감수를 부탁드리잖아요. 저희가 모르는 것은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당연한데, 인티머시 신에 관해서는 '배우니까 할 수 있지' 하고 소홀히 해온 것이 잘 생각해 보니 이상하더라고요.
그게 배우의 일이라고 말한다면 그뿐이겠지만, 남남인데 갑자기 키스하고 섹스하는 것처럼 연기한다는 게 대단한 일이에요. 원래는 엄청나게 사적이어야 할 부분을 당연한 듯이 하는 거잖아요. 그게 사실은 무서운 일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없으면 현장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요.

아사다 : 설명드렸듯이 대본의 지시문은 쓰여 있지 않은 애매한 부분도 많아요. '나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여기까지 할 생각으로 캐스팅했는데' 하는 식으로 배우와 감독, 프로듀서 사이에 인식이 엇갈리는 일이 꽤 있거든요.

사노 : 지시문에는 '두 사람이 껴안고 있다'라고만 쓰여 있는데 배우는 허그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감독은 섹스하는 것처럼 보이는 레벨을 요구한다거나 하는 경우죠.
키스는 가벼운 키스인지 진한 키스인지, 베드신이면 나체인지 담요는 덮었는지, 조명은 깜깜한지 달빛 정도의 밝기인지, 거기에 따라 배우의 거부감과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져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사전에 세세하게 조정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사다 : '오늘은 어디까지 벗게 될까', '어디까지 해야 할까'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현장에 오는 것과 그 불안이 사전에 클리어된 상태에서 촬영에 임하는 것은 마음의 안정도가 완전히 다르고 결과적으로 연기의 퀄리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배우가 안심하고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필요해요.

사노 : 그리고 감독이 거물이거나 배우가 젊은 신인일수록 현장에서 다른 것을 요구받았을 때 NO라고 말하기 힘든 문제도 있죠.

아사다 : 성공을 꿈꾸는 신인 배우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거절하기 어려울 테고, '여기까지 벗겠습니다', '여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근성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배우라고 하는 풍조도 이것을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현장의 분위기로부터 배우를 보호하는 것도 저의 역할입니다.

 

현장에서 눈치를 챈 사람이 '배려'로 케어하는 게 아니고 전문가가 제대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거군요. '이 작품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투입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배우에게는 안심이 되는 재료일 것 같습니다.

아사다 : 말씀대로 제가 투입됨으로써 '무엇이 촬영의 기준인가' 하는 공통 인식을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메리트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인티머시 신에 대해서는 저에게 전부 맡겨 주세요' 하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이 있으면 타 부서 스태프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도 메리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도입하는 것은 스태프와 작품을 위한 일이기도 하군요.

아사다 : 물론 그만큼 인건비가 들지만 저는 거기에 상응하도록, 당일 촬영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게 준비합니다. 역시 현장에서 '못 들었다', '그건 못 한다' 해서 그날 촬영이 날아가는 케이스도 많이 있다고 하니까요.

사노 : 맞아요. 촬영이 하루만 캔슬되어도 순식간에 100만, 200만이 날아가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역할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도입해 보고 사노 씨가 좋다고 생각한 것은 어떤 부분인가요?

사노 : 정말 좋았던 것밖에 없어요.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데, 우선 무엇보다도 사전에 회의를 해서 제작진과 배우가 합의를 했기 때문에 모두가 안심하고 당일 촬영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습니다.
실제로 배우들도 이제 안심하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밖에 프로듀서로서 느낀 메리트가 있나요.

사노 : 말해 보자면 촬영장은 기본적으로 감독의 것이기 때문에 프로듀서는 연출에 의견을 내기가 어렵거든요. 특히 저는 저보다 베테랑인 감독과 함께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더 그래요. 그래서 사전에 프로듀서로서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이 장면의 이 대사는 이런 의미니까 이렇게 찍고 싶다'라는 것을 다 같이 의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그건 인티머시 신에 한정하지 않고요?

사노 : 네. 사실은 그렇게 대본에 대해 사전에 의논하는 작업을 모든 장면에서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현장에 그럴 시간이 없고 그럴 돈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작 현장에서는 그런 시간이 돈에서 나오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최소한 인티머시 신만이라도 그게 가능했던 것이 제 안에서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실제로 배우도 그렇고 스태프들도 '다른 신도 이렇게 미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아사다 씨가 들어와 주셔서 영상 업계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모두에게 공유할 수 있었던 거죠. 인티머시 신 그 자체도 물론이지만 그런 의의도 컸던 것 같습니다.

 

아사다 씨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미국과 시스템이 달라서 곤란했던 점이나 일본의 관습과 맞지 않아서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아사다 : 제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강습과 트레이닝을 받았던 미국에는 SAG-AFTRA(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라는 큰 노동조합이 있어서 '인티머시 신에서는 동의서를 써야 한다' 등의 다양한 규칙이 마련되어 있어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그 규칙을 근거로 '이걸 지켜주세요'라고 말하면 되기 때문에 굉장히 수월하죠. 그런데 일본에는 우선 그런 규칙 자체가 전혀 없습니다.

 

지켜야 할 기준을 제시하려 해도 그 기준이 없는 거군요.

아사다 : 그렇기 때문에 제 경우에는 의뢰를 받으면 제일 먼저 '세 가지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을 프로듀서에게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인티머시 신에 관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배우부에 설명해서 동의를 얻고 강제, 강요를 하지 않을 것. 두 번째는 성기가 노출되지 않도록 반드시 사전 작업을 할 것. 그리고 세 번째는 클로즈드 세트라고 하는 최소 인원의 촬영 체제로 진행할 것.
이 세 가지를 준수할 의지가 있는 분하고만 일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저와 프로듀서 간의 구두 약속이죠. 물론 법적 구속력은 없기 때문에 위반하더라도 페널티는 부과되지 않아요.

 

사노 씨는 향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계속 도입한다고 할 때 과제나 어려움을 느낀 부분이 있나요? 예를 들면 지상파 연속 드라마는 제작 스케줄이 굉장히 타이트하다고 들었는데,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사노 : 바로 그 점이 문제인데, '엘피스'는 기획의 성립 과정이 특수했던 것도 있어서 솔직히 촬영 개시 전에 각본이 전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인티머시 신처럼 배우와 현장의 부담이 큰 장면은 충분한 프리프로(프리 프로덕션의 약자로 촬영 전 준비 작업의 총칭)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실감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반드시 미리 각본을 완성시켜 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현장에 시간과 돈이 없다는 문제도 클 것 같네요.

사노 : 결국 시장을 넓히지 않으면 지금의 루틴으로는 제작비가 늘 수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열심히 퀄리티 높은 것을 만들어서 그게 해외에서 팔리면 거기서 벌어들인 돈을 다음 제작비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을 위해 배우와 스태프의 시간을 구속하려면 그만큼의 보수를 지급해야 해요. 재미있는 기획을 만들면 "이거라면 돈이 없어도 참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그렇게 하면 열정 페이가 되기 때문에. 그냥 악순환이에요.

 

10월에 프랑스 칸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국제 영상 콘텐츠 박람회 'MIPCOM'에서 '엘피스'가 Asian World Premiere TV Screening으로서 세계 최초로 상영되었습니다. 이것도 해외에 통용되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시도의 일환이었군요.

사노 : 해외 언론의 취재를 받았을 때 예산 이야기가 나와서 "저희는 0이 두 개 달라요" 이런 말을 했더니 "어떻게 만드는 거야?!" 하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결국 모두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고 있다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어요.

 

여담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번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도입된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나가사와 씨의 '과격한 신'을 멋대로 억측하는 잡지 기사가 나와서 거기에 대해 사노 씨가 항의 트윗을 하셨습니다. 인티머시 신을 에로틱한 시선으로 보며 선정적으로 관심을 끌거나 여배우가 벗는 것을 '몸을 아끼지 않고 배우 정신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는 풍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사다 : 그 기사를 읽었을 때는 기껏 사노 씨가 배우를 보호하자,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저를 투입해 주셨는데 역으로 이용하는 듯한 취급을 받아서 굉장히 안타까웠어요. 인티머시 신이라는 것은 그에 따라 스토리가 전개되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변화하거나 이야기에 필요한 흥미로운 신이 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을 정하는 것은 감독과 배우입니다. '몸을 아끼지 않은 연기' 따위의 말로 여배우의 노력과 각오를 따지는 것은 아주 얄팍한 생각이죠.
예를 들면 3화에 에나가 부엌에서 우는 장면에서 나가사와 씨의 연기는 정말 훌륭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영혼을 걸고 혼신의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벗는지 안 벗는지 스킨십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로 저희가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노 : 아사다 씨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해주셨습니다. 애초에 그럼 노출 신이 있다고 드라마를 보냐 하는 거죠. 그건 시청자도 바보 취급하고 만드는 사람도 바보 취급하는 거예요. 뭐, 과거에 베드신을 셀링 포인트로 삼는 작품이 있었던 전례가 있어서 나온 기사일지도 모르고, 무조건 쓴 사람만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 답답한 부분입니다만.
다만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그런 게 아니잖아'라는 코멘트를 써주는 분도 있어서 그런 건 감사했어요.

아사다 : 3화와 4화의 인티머시 신은 에나와 사이토의 관계성을 표현하는 데 필연적인 흐름으로 그려져 있었고, 표현도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자화자찬이지만 그 장면에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어요.
이번에 '엘피스'라고 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은 작품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투입해 적절한 묘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노 씨의 이번 시도는 시청자뿐만 아니라 영상 업계에도 굉장히 큰 메시지를 던지게 될 것 같아요. 참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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